토론토 생활 팔십사일째 _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대학 후배 중에 별명이 왕피곤,이라는 친구가 있다. 토론토 오기 한달 전쯤이었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 후문 근처를 지나가다가 왕피곤,을 우연히 마주쳤다. 학교 졸업하고 몇년만이었을까. 연락도 만남도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라 나는 좀 서먹했는데, 그는 예의 그 큰 목소리로 "누나-" 하고 외친다. 타고 가던 자전거를 세우고 몇 마디 나누는데, 왕피곤의 표정엔 '반가움'만 가득 하다. 너 뭐하고 지내냐, 하니 뭐 그냥 아직 단체 활동 하고 있죠, 라고 대답하는데, 조금 민망한 표정인 것 같다. 나도 포함되었던, 대학 시절 학생운동 했던 사람 중에 왕피곤처럼 아직도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도 벅차다. 그런데, 그는 조금..
토론토 생활 팔십삼일째 _ 2010년 2월 9일 화요일 한국에서 날라온 편지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편지. 내겐 너무 친숙한 글씨와 말투(구어와 문어를 거의 일치시킨 문체랄까ㅋ) 덕분에 읽으면서 많이 웃었다. 고마워, ㅇㅊ, 역시! 종일 흐리더니 저녁에는 눈발이 날린다. 일기예보엔 내일부터 눈 내린다고 한다. 서울엔 '가른비', 겨울과 봄을 가르는 비가 내린다는데, 여긴 아직 겨울이 조금 더 남은 모양이다. 그래도 날짜는 어느새 2월 중순에 가까워지고, 점점 시간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주였나, 학교 근처에서 늦게까지 술마시고 귀가하는데, 취한 기분에 눈 쌓인 길을 걸으니 흥이 막 올라와 깔깔거렸던 순간에 찍은 것. 밤도 늦었고 다음날 할일이 많은데도 마음..
수업 시간에 알게 된 사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생각. : 캐나다에는 이미, 의과대학 학생 중 50% 이상이 여성이다. 그에 반해 의과대학 교수, 대학병원 원장, 각 과 과장 등 교수직과 고위 스텦들은 대부분 백인 남성들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의과대학 여학생이 수업이나 실습에 들어가면 백인 남성 교수가 "너는 간호사 아니냐, 여긴 의대 학생들 수업이다"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니, 지난 십년 동안 성별 구성이 많이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에도 의과대학의 전반적인 문화는 매우 남성중심적이다. 여전히 시체 해부는 남성의 몸으로 하고, 페니스와 바기나, 유방 빼고는 성별 육체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배운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의과대학 여학생 비율이 늘어나자, '의사직의 여성화(feminization ..
토론토 생활 팔십이일째 _ 2010년 2월 8일 월요일 서울은 비가 내린다는데, 여긴 며칠째 날이 맑다. 사실 맑은 날이 더 춥지만, 그래도 이렇게 맑은 날씨가, 투명해서, 좋다. 김동춘 선생님이 '국제학 센터'에서 '진실과 화해위원회'에 관한 발표를 한다길래 찾아가서 듣고, OISE로 돌아오는 길, 맑고 추운 교정을 걷는데 그 짱짱한 날씨가 좋아서 혼자 좀 웃었다.ㅎ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선 설 명절에 할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내 마음이 바쁘다. 그리고 종종, 논문 작업의 속도를 생각하면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시간에 유난히 인색한 나. 조급함이 불안과 함께 찾아오면 늘 쩔쩔매곤 한다. 한번엔 한 걸음밖에 못걷는 것처럼 지금 누릴 수 있는 ..
토론토 생활 팔십일일째 _ 2010년 2월 7일 일요일 켄싱턴 마켓의 브런치 식당에서 발견한 빨간 목도리 아저씨. 여기선, 가끔 사십대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깜짝 놀랄 감각을 엿보곤 한다.ㅎ 일요일 낮 햇살 안에, 하얀 머리와 빨간 목도리, 소라색 풀오버가 서로 참 잘 어울린다. 표정까지 살아있어서 도촬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센스쟁이 아저씨. 다음주 몬트리올 여행을 이 식당에서 의논했다, 케빈이랑 양이랑. 케빈이랑은 의도치않게 토론토 절친 되겠다, 꽤 자주 만나고 어울리게 되네. 아침에 법회 갔다가 이렇게 점심을 길게 먹고 도서관에 갔더니 피로와 졸음이.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앉으니 좀 낫다. 머릿속은 논문 생각으로 뒤죽박죽이지만 마음은 가볍고 단순하다. 잘 안되면 될 때까지 하고, 하다 지치면 쉬었다 하..
토론토생활 팔십일째 _ 2010년 2월 6일 토요일 나는 맑은 날씨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창밖 하늘을 본다. 오늘 아침, 토요일답게 늦잠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쨍,하니 좋다. 맑은 날엔 습관처럼, "이런 날에 CN타워 가야되는데!" 하곤 했는데, 오늘은 말만 않고 아점 챙겨먹고 나섰다. 북쪽 끝인 우리집에서 남쪽 끝인 호숫가까지는 지하철로 사십분 정도. 남산타워도, 63빌딩도 한 번 안가보구선, 여기선 이렇게 관광객 노릇을 하는구나, 싶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순식간에 삼백미터도 넘는 높이에 도착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는 토론토 시내와 'sea'라고 불린다는 넒고 푸른 온타리오 호수. 산이 없는 토론토는 평평한 땅에 건물과 작은 집들, 나무들 그리고 길들로 빼곡하다. 온타리오 호수..
토론토 생활 칠십구일째 _ 2010년 2월 5일 금요일 _ 금요일 오후 운동 끝나고 씻고 나오면 체력이 완전 바닥난 기분이 든다. 일주일간의 피로가 어딘가 잠복해있다가 그 순간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은. _ 영어를 잘 못하는 나를 볼 때마다, 내가 한국어에 얼마나 능한지 알겠다.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세세한 감정들과 의미의 깊이들. 태어나서 지금까지 갈고 닦은 그 한국어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기 위해서라도, 내 삶에 이민 같은 건 없을 듯.ㅎ _ 영법 중에는 물의 표면에 떠서 발장구 치고 손과 발로 물을 끌어당겨 얼른 앞으로 전진하는 방법들도 있지만, 물 속에 가만히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가를 반복하는, 몸의 긴장을 빼고 물에 나를 맡기는 잠영도 있다. 그러다가 깨닫기도 한다, 내 몸의 어느..
토론토 생활 칠십팔일째 _ 2010년 2월 4일 목요일 Feb 4, 2010 @ Bloor Theater _ 역사는 일정한 plot을 가진 스토리입니다. 우리는 왜 유럽 중심의 plot으로만 역사라는 이야기를 쓰는가. 프랑스 식민지배를 무너뜨렸던 아이티 혁명이 유럽 국가들의 혁명에 미친 영향은 역사라는 이야기에서 사라지고 우리는 프랑스 혁명만을 영향력있는 역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_ 나는 역사를 개인주의화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흑인 해방 운동 하면, 마틴 루터 킹을 이야기합니다만, 흑인 해방 운동의 진정한 역사는 민중들이 벌인 집합적인 투쟁에 있습니다. 그들이 매일 겪은 일상과 삶, 그리고 대중 운동에서 흑인 해방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합니다. _ 페미니스트들은 감옥에 있는 수감자들에게 관심이 없지만 ..
토론토생활 칠십칠일째 _ 2010년 2월 3일 수요일 어제 늦게 귀가해서 오늘은 왕늦잠. 학교 도착하니 2시 반이 넘었더라. 내일 수업 있는데, 아직 읽은 거 정리도 안했는데, 학교도 늦게 가놓구선 공부가 잘 안되더군. 그래서 메일도 쓰고 딩가딩가 하다가 운동 갔다가 귀가. 배고파서 저녁 많이 먹었더니, 또 졸린다. 오늘 공부는 내일로 미루고, 일단은 자야겠다... 하고 게으름을 피워본다. 낮에 열어본 메일함에는 ㅈㅇ이가 낳은지 한달된 아가 사진을 보낸 편지가 있었다. 웃기게도, ㅈㅇ이 아가를 상상할 때, 한번도 닮았을 거라 예상 못했는데 참 닮았더라.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가까운 친구가 아이를 낳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이 아이가 자라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엄마 친구' 노릇을 하게 될..
토론토생활 칠십육일째 _ 2010년 2월 2일 화요일 오늘 저녁 OISE 대강당에서는 CWSE(Center for Women's Studies in Education)와 토론토 알파(Toronto ALPHA) 그리고 한국의 나눔의 집이 공동주최하는 영화상영회가 열렸다. 나눔의 집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Angela Lytle이 기획을 하고, CWSE가 주관을 맡은 행사다. 영화는 김동원 감독의 이 상영. 영화는 좀 건조했다. 할머니들의 삶과 현재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고발하고 있다고할까. 그리고 한국, 대만, 필리핀, 중국, 네덜란드 출신의 할머니들이 병렬적으로 등장하고 영어 자막에 나래이션도 영어다. 유엔에서 의뢰받아 제작된 영화다웠다. 그런데도 영화 말미에 조금 눈물이 나왔다. 아직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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