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생활 구일째 _ 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오늘, 토론토 대학 아이디 카드를 만들었다. 이메일 계정도 생겼고 무선 인터넷과 학내 컴퓨터 접속이 가능해졌다. 물론 도서관 책 대출도 가능하고 도서관 웹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자료들에도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토론토 대학 중앙 도서관의 장서 규모는 굉장하다고 하던데, 12월 중순부터 말까지, 여기 사람들 겨울 방학에 들어가서 센터도 오이즈(OISE)도 썰렁해지면, 중앙 도서관 여성학 섹션에서 좀 놀아볼까 한다. 점심은 아이디 카드를 만들었던 중앙 도서관 2층에 있는 푸드 코트(우리로 치면 학생 식당 같은 곳?)에서 먹었다. 따뜻한 커피 사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싸주신 볶음밥을 꺼내놓고 먹는데, 다들 집에서 싸오거나 어디서 사온 점심 도시락을 꺼내놓고..
토론토 생활 팔일째 _ 2009년 11월 26일 목요일 오늘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세 끼니 중 두 번을 바깥에서 먹었고, 양의 서른 네번째 생일이었고, 세 시간 넘게 북미 출신 네이티브 스피커와 대화를 나눈 날이다. 내가 비영어권 출신의,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내가 여자라는 사실만큼이나 나에게 복잡하고 들쑥날쑥한 감정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에스니서티와 내셔널리서티를 가진 사람들이 마구 섞여사는, 그러나 소통 언어는 '영어'인 대도시 토론토에서 문법과 읽기로 치면 영어에 능숙하지만 말하기와 듣기는 꽝인 동아시아 출신의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영어와 관련된 정체성과의 끝없는 만남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와 관련하여 오늘 떠올렸던 문장은 이것이다. "부러..
토론토 생활 칠일째 _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 학교 가기 싫다, 였다. 잇몸은 어제보다 더 부어서 아프고 두통도 약간 있는 것이 생리가 곧 시작될 것 같은 컨디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뜩 껴입고 집을 나섰다.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더니 비가 온다. 순식간에 온 도시가 우중충하다. 비단 몸이 안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학교에 가려니 싫은 마음이 딱 생긴다. 낯선 사람들, 낯선 공간에, 낯선 존재로 가 있는 것 자체가 좀 싫었다. 오래 다녀서 익숙해진, 그래서 편하고 때로는 지겨워지기도 했던 내 학교 내 연구실을 두고 내가 왜 이렇게 낯설고 어색한 곳으로 가야할까, 스스로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막상 학교에 가보니 정말로 어색하더라, 허허. 그래도 그 어색..
토론토 생활 육일째 _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아침기도 할 때 읽는 보왕삼매론의 첫째 구는 이렇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하셨느니라." 아침마다 이 구절을 읽지만, 이 구절이 가슴에 가장 와닿을 때는 아플 때다. 몸이 건강하고 가벼워 마구 탐욕이 생길 때는 저 구절을 생각치도 않다가 막상 아프면 저 구절이 딱 떠오른다. 오늘이 바로 그 때다. 어젯밤부터 열이 조금 나더니, 왼쪽 위아래 잇몸이 아프고 그 가까이 임파선이 부었다. 오전에 몸이 가라앉아서 조금 쉬었고, 학교 가기를 포기하고 내내 집에만 있었는데 급기야 좀전부턴 목도 아프고 머리고 아프다. 앗,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과 앗, 어쩌지, 병원비 비싼데....
토론토 생활 오일째 _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학교에 다녀왔다. 여성교육연구센터(CWSE)의 센터장 록산나(Roxana) 교수를 만나고, 센터 조교 제이미(Jamie)로부터 사무실과 컴퓨터, 도서관 등의 사용 관련하여 안내를 받았다. 록산나 교수는 친절했고 제이미는 귀여웠으며 센터 분위기는 자유로왔다. 내 사무실과 책상, 컴퓨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센터와 관련하여 내가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은 없(어보였)고, 얼마나 자주 센터에 나가 공부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전적으로 내 자유에 맡겨져 있다. 센터 안밖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행사들(세미나, 워크샵, 전시회, 영화상영회, 출판기념회 등)에 대한 참여도 자유롭게 선택하면 될 것 같다. 록산나 교수를 만나러 가기 전, 그 약속을 취소하고 싶을 정도로 ..
토론토 사일째 _ 2009년 11월 22일 일요일 드디어 시차적응에 성공한 건지, 저녁 8시 반쯤 누워서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아침 먹고 인터넷으로 찾아본 한국절에 다녀왔다. '한마음 선원' 토론토 지원. 한마음 선원은 한국 본원 포함 10개 넘는 지원을 가진 종파였고, 선원장인 대행스님은 비구니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가를 이룬 스님이었다. 영상으로 본 법문은 추상적이고 어려웠다. 나중에 소식지에 실린 법문 읽어보니 조금 이해가 되었다고 할까. 한마음 선원은 기복종교가 아닌 수행과 세상에 대한 기여의 의무를 가진 불교를 지향하고 있었고, 가장 강조되는 것은 '깨달음'이었다. 어색하게도 새로온 신도로 앞에 나가 인사도 하고 공양도 하고 보살님들이랑 이야기도 나눴다. 날씨가 맑고 따뜻해서 일요일 아침 기분을..
토론토 생활 삼일째 _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시차적응이 안돼서 인지, 잠자는 시간이 안정적이지 않다. 매일 새벽 세시쯤이면 잠이 깨서 초저녁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곯아떨어진다. 종일 졸리고 소화도 잘 안되고 피곤하다. 여독도 있을 테고 낯선 곳에 적응하는 데 드는 에너지 때문에 피로감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몸이 가라앉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얼른 말끔하고 활동적인 몸 상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막 밀려오는 초저녁 잠을 참아볼까 했는데, 눈을 떠보니 어느새 침대에 널부러져 자고 있다. 시각은 밤 11시. 씻고 책상 앞으로 와서 앉는다. 일기라도 쓰고 자야지, 싶어서.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없다. 집 자체가 괜찮으면 좀 위험한 동네고, 동네가 좋으면 빈 집이 없다. 아..
토론토 이틀째 _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오늘은 시내에 나가서 핸드폰을 만들고, 온타리오 교육연구소(OISE)를 슬쩍 구경하고, 원룸 아파트 두 군데를 둘러봤다. 그 사이 나는 점심 먹은 게 체해서 버스에서 토할 뻔 했고, 목적지 지하철 역 전에 내려 화장실에 들렀다. 오늘 저녁 식사는 패쓰, 하고 밤엔 좀 푹 자야겠다 싶다. 오늘 핸드폰 만들면서 발견한 건, 여긴 한국에서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핸드폰 요금의 경우, 받는 전화도 거는 전화와 동일하게 요금을 내야한다. 이런 요금 체계에서 살면 오는 전화가 달갑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요금도 분당 450원 정도로 엄청 비싸다. 은행도 계좌에 일정 수준의 잔고가 없으면 매달 현금 인출..
토론토 생활 첫날 _ 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한국 시각으로 밤 열시에 비행기를 타서 토론토 시각으로 새벽 한시에 도착했다. 약 열여섯 시간 의 여행. 긴 비행 때문인지, 시차적응 때문인지 피곤하고 졸린다. 토막잠을 조금씩 자면서,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다. 입국 심사하는 곳에서, 평소답지 않게 긴장되고 떨렸다. 캐나다는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고, 비자 발급에 도움이 되는 문서만 준다. 밴쿠버 공항의 이민 담당 부서에서 입국하는 사람들 중 비자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인터뷰하고 발급하는 것이 여기 절차이다. 은행 창구 같이 생긴 곳 너머에는 캐나다 이민국 직원들이 앉아있고, 외국인들은 줄을 서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캐나다에 온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면 직원들은 캐나다에서 무엇을 ..
두 밤만 자면 떠난다. 긴 기간도 아니고,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 막상 꽤 뒤숭숭하다. 그제와 오늘, 아버지랑 통화했는데, 서운하신 것 같다. 한참 못보겠네, 하는 문장의 끝이 흐리다. 내 마음도 젖는다. 오늘 ㅇㅎ이랑은, 두시간 동안 천천히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한참 이야기 나눌 때는 몰랐는데, 막상 각자의 집으로 돌아설 때, 그냥 좀 헛헛하다는 걸 느꼈다. 여비를 챙겨주신 지도교수님이 택시를 타고 떠나는 걸 가만히 보았던 오늘 오전에도 좀 마음이 휑했다. 괜히, 겨울철에 떠나서 마음이 이런가 했다. 내일이면 내동생과도 이모들과도 조카와도 시부모님과도 또 내 사랑하는 친구들과도 작별 전화를 해야하는데, 좀 마음이 그렇다. 이렇게 짧은 이별에 뒤숭숭해지는 이 마음이, 지금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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